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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먼지 맛 담배 한모금
무엇 하나 그냥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 내 눈 앞에 우연으로 생겨난 일이란 없다. 찍힌 사진 한장을 들고도 왜 무엇을 담으려 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要不然 你的頭腦就是石頭!
매화꽃 피는 시간을 맞추어 언제나 내리는 비는 어렵사리 피어난 어린 봉오리 하나 둘 셋 땅으로 내린다 남은 것들 남김 없이 실하게 맺어라 여름의 태풍도 이겨내고 떨어진 봄꽃의 허망을 떨쳐 넘치게 알차게 맺어라 대신 오늘 떨굴 봉오리는 치사하게 달려있지 못하게 비야 세차게 내려다오. 더욱더 세차게.
지금껏 흑백사진을 담아주던 까망이 Rollei35가 밥친구를 얻었다. 호주에서 공수해준 'tomato'님과 'miss moon'님께 감사드린다. 두 친구는 이렇게 닮았다. 크기도 비슷하고 색깔도 검정이고 밤에 다니기 싫어하던 녀석이 친구를 얻어서 이제는 밤길도 두렵지 않다. 크기는 어느정도이냐면 답배갑을 함께 두고 갸늠해보자. 그런데 사실 답배갑 보다는 다들 두껍다. 약 1.5배 암튼 밤에 꺼낼 엄두를 낸다.
나보다 더 오래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옛 필름카메라. 촛점을 알려주지도 노출을 맞춰주지도 셔터를 조절해주지도 않는 완전한 기계이기에 무조건 사진은 내 탓이다. 그래서 필름을 맞기고 기다리는 시간은 설레임과 두려움의 시간이다. 그 중에 간혹 그 장면을 담았다기보다 그 삼차원 공간의 공기와 사람들의 마음까지 담긴 단 한장을 마주하면 아주 좋은 카메라라 생각할 수 있다.
한적한 오후 한적한 공원 한적한 노인 한적한 인생 뻗어나갈 가지들이 잘려버린 나무에 늙은 가지처럼 앉아있는 노인이 자유롭게 비상할 날을 꿈꾸며 날지 않는 비둘기를 살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