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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참소중한당신 원고 방출!

터돌 2013. 5. 7. 17:46

자기 소개가 힘들다. 서울대교구 신부이며, 한국 메리놀 외방 선교회 협력사제이기도 하며, 대만 메리놀에 속하기도 하고, 대만 타이중 교구에 속하기도 한다. 사실 자신의 정체성을 조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살피는 일인데, 처음부터 참 복잡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많은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고구마가 잘 익었는지 보려면 젓가락으로 가운데를 쑤욱 찔러본다. 대만의 땅덩이를 표현할때 고구마를 닮았다고 하는데 찌른 젓가락 자리가 지금 일하고 있는 원주민 마을이다. 대만에 왠 원주민하겠지만 뜻 마냥 이 땅의 원래 주인이다. 중국말을 쓰는 대만은 중국이 아니냐는 편견에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중국어를 이 땅에 쓴 것은 반백년을 겨우 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 소개가 어렵듯이 일하는 곳을 설명하는 것도 한참이 걸린다. 이 땅의 역사와 언어, 문화와 종교 등을 소개하다보면 참 복잡한 섬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삶은 단순하다.

원주민들은 산지인으로 불렸기에 대부분 산자락에 터전을 잡고 산다. 그 조상의 삶대로라면 수렵생활이다. 아직도 어렵잖게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고기들을 맛볼 수 있다. 단순 소박한 이들의 삶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도 그들의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직도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일제시대의 영향으로 접해보지 못했던 물건의 이름은 일본식, 그 후에 더 새로운 것은 중국어로 사용한다. 수렵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했던 자신의 수렵터를 위해서 부족끼리 싸우며 머리를 배어오던 그 용맹함이 일제시대와 장개석 정부 시대 위협이 되었기에 어떻게든 그 성질을 죽여야만 했다. 그래서 원주민들에게 생활비 보조, 값싼 술 제공 등으로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지금의 그들을 괴롭히는 괴물이 되었다. 어떻게든 자립을 피해 의지하려하고 알콜중독자들과 술로 인한 문제가 원주민들 사이에서 여전하다. 

지금 이곳에서 일하도록 주교님의 명을 받고 도착해서는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산봉오리들과 깨끗한 공기, 열대지방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상쾌함이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치 않게 거리에 쓰러져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일하는 수녀님에게 사정을 들었을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보는 술주정뱅이와는 비교될 수 없는 일들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술 좀 먹는다 하면 삼사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먹는거다. 술 먹다가 잠이 들고 꺼어나서 손에 들려있는 술을 다시 먹고 그렇게 며칠정도 보내야 술 좀 하는구나 소리를 듣는다.

하루는 운전해서 공소에 일이 있어 가는데, 중간에 오토바이가 뉘여져 있고, 사람은 바닥에 널쳐저 있어서 교통사고가 났구나하고 차를 멈춰 내려 다가가 의식이 있는지 보려 말을 걸어보는데, 스르르 눈을 뜨더니 신부! 아무일 아니야하고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다친 곳이 없냐고 계속 묻는데 아무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풍기는 술냄새를, 이미 반쯤 풀려버린 눈동자를 보고는 ! 술이 잔뜩 취해서 오토바이 타고 가다 잠이 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대도 되어보이지 않는 여자아이였다. 

가끔 접하는 이런 일들이 해프닝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런 일로 장례를 치르고, 비슷한 일로 병원을 방문하는 일은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 문화라고도 할 수 없는 이런 모습이 사람들의 묵인 속에 대를 이어 내려오고 아이들은 이런 일들을 너무 쉽게 배워버린다. 반복되는 이런 악습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이 곳의 선교사에게 필요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해치는 습관에서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는 습관으로, 악습을 묵인하는 태도에서 어떻게 서로를 돌보는 태도로 옮겨가도록 돕는 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쁜소식을 전하는 선교사의 일이 될 것이다. 

김씨 성을 가진 나에게 유리한 한가지가 이 곳에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자기 성씨를 김씨로 가지고 있고 가까운 혈족과의 혼인을 막기 위해 옛부터 딸을 시집보내면 돼지를 신랑측으로 부터 받아 모든 일가 친족들과 나눈다. 매번 혼인 때면 돼지고기 한덩이가 나에게 돌아온다. 더 없이 기쁜 한가족이 된 느낌이 그 돼지의 아직 남아있는 온기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같은 성을 가진 모습은 다른 이들이 나를 가족으로 불러주는 때는 구운 고기보다 더 뜨거움이 느껴진다.